
어려울 때 더 움직이고, 잘될 때 성찰하라...
조두형 씨가 '섬기는 자'로 사는 법
30년 군 생활 후 시니어 기부플래너로

“기회는 잡는 게 아니라 오는 겁니다.
오는 기회를 붙잡으려면, 평소에도 쉬지 말고, 움직이고 있어야 합니다.”
차분하면서도 단단한 목소리로 조두형(66) 선생은 말을 이어갔다. 인터뷰 내내 그의 말에는 삶의 궤적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 ‘비주류’라 불리던 시니어, 이제는 사회의 한가운데서
한때 나이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비주류’로 밀려났던 시니어 세대가 지금은 다르다. 은퇴 이후에도 활발한 경제·사회적 활동을 통해 거침없는 도전을 이어가며 젊은 세대 못지않은 사회 주류로서 영향력을 과시한다. 개인의 자아실현을 넘어 사회 연대와 지속 가능한 발전에도 영향을 미치는 주체적인 시니어 세대. 조두형 선생 역시 그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화요일 오후, 서울시니어지원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정갈한 인상에 따뜻한 미소를 지닌 그는 현재 ‘시니어 기부 플래너’로 활동 중이다.
조 선생은 1981년 육군 포병장교로 임관한 후 29년 8개월간 복무했다. 이후 SK그룹과 민간기업 상무이사로 일하다 2023년 퇴직했다. 군인과 기업인으로 40년 가까이 걸어온 그가 택한 새로운 길은 '기부'였다.

■ “할 수 있는 일, 눈앞의 일부터”
그가 맡은 일은 학대 위기에 놓인 아이들을 위해 개인과 단체, 기업을 찾아다니며 기부를 독려하는 일. 이전 경력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이 일을 시작한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할 수 있는 일, 눈앞에 보이는 일부터 시작하는 게 제 원칙입니다.“
그의 하루는 여전히 분주하다. 현재 그는 IT 감리 및 컨설팅 기관의 이사로 재직하면서 동시에 시니어 기부플래너로도 활동 중이다. 2025년 5월부터 사단법인 '따뜻한 하루'와 함께 보호 경계에 있는 학대 아동을 위한 기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비상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보는 누구보다 뜨겁다. 개인과 단체에 사업 내용을 알리고, 기업과 종교단체를 찾아다니며 동참을 설득한다.

■ 원칙을 지키면 후회 없이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합동참모부, 육군본부, 방위사업청 등 주요 부서에서 작전·교육·정보 분야 전문가로 활약했던 그가 기부 플래너라는 새로운 역할에 적응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의 신념은 어릴 적 부모에게서 비롯됐다.
"부모님은 늘 '잠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도 원칙을 고수하라'고 하셨어요. 살다 보면 내적·외적 갈등이 생기는 데, 그럴 때마다 그 말이 제 선택의 기준이 됐습니다.”
그는 이 가르침을 자녀에게도 그대로 전했다.
아들이 다소 억울할 수 있는 상황에 빠졌을 때도 "당장은 손해 같아도 원칙을 지켜라"라는 말로 응원했다.
“설령 기대하는 것과 다른 결과라 해도 후회는 없어요. 그게 결국 자기 자신을 단단히 만드는 길이니까요.”
■ “한계를 인정하면 오히려 자유로워진다”
조 선생에게 남다른 인생 모토가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여건의 한계를 인정하면 일을 대하는 태도나 시각이 긍정적으로 달라집니다.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성과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지고, 에너지가 선순환으로 작용하죠.“
그는 역경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보통은 어려울 때 움츠러들고, 잘될 때 활동적으로 행동하기 쉽습니다. 저는 반대로 했어요. 힘들 땐 몸을 움직였고, 잘될 땐 생각을 다듬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태도는 그가 서울시니어일자리지원센터를 통해 새로운 기회를 찾고, 시니어 기부 플래너로 활동하다 IT 컨설팅 분야로 재취업하는 과정에서도 빛을 발했다.
“시니어일자리지원센터에서 ‘지속 가능한 경력’의 의미를 다시 배웠습니다. 그게 제 인생의 전환점이었죠.”

■ “기회는 움직이는 사람에게 온다”
시니어 기부 플래너는 NPO·NGO 단체의 후원자 모집과 기부 문화 확산을 담당하는 시니어 맞춤형 일자리다. 서울시니어일자리지원센터에서 직무교육과 인턴십을 제공하며, AI 활용 교육 등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 시니어의 디지털 역량 강화에도 중점을 둔다. 1:1 맞춤 상담, 커뮤니티 지원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60세 이상 서울 시민의 현장 실무 경험과 취업 연계까지 지원한다.
"기부가 필요한 곳은 많습니다. 제 실천 원칙은 당면한 곳에서, 눈앞에 보이는 일부터, 할 수 있는 일 우선으로 하는 겁니다."
시니어 기부 플래너는 풍부한 인생 경험과 공감 능력을 바탕으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로 선생에게 잘 맞는 일인 것 같다.
일자리를 찾는 시니어들에게 그는 조언한다. "평소에도 쉬지 말고, 움직여야 합니다. 굴러가던 자전거는 바로 방향 전환이 가능한 것처럼, 활동하고 있어야 기회도 생깁니다." 그는 "기회는 잡는 게 아니라 오는 것이더라"라고 강조했다. "오는 기회를 잡으려면 움직이고 있어야 합니다.“
'섬기는 자'로 산다는 것
인터뷰 말미, 지금의 자신을 정의해달라고 하자 조두형 선생은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답했다.
"섬기는 자입니다."
군인, 기업인, 그리고 지금의 시니어 기부 플래너로 살아오며 그는 깨달았다.
“젊을 땐 모든 게 내 능력의 결과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어느 순간, 나 혼자 힘으로 된 일은 없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이제는 감사함과 책임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우주인 이소연 씨는 한때 자신의 노력에 비해 받는 것이 적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주인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만약 100년 전 여성이 교육받을 기회조차 제한받던 시대에 태어났다면, 혹은 지금도 여성의 활동이 철저히 제약받는 다른 땅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이소연 씨는 자신이 지금, 이 시대, 이곳에서 여성으로서 우주인이 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기회이고 행운인지를 깨달았다고 한다.
조두형 선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자의 이야기에 공감을 표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의 성취를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바라보게 되면서 불만보다는 감사와 책임감을 느끼게 됐죠."
1959년생인 선생이 지금, 이 시공간에서 군인으로, 기업인으로, 그리고 시니어 기부플래너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주어진 기회라는 인식이다.
시니어 기부 플래너는 사회적 가치와 시니어의 경륜을 결합한 대표적 신노년 일자리로, 기부 문화 확산과 시니어의 사회 참여 확대에 이바지한다. 풍부한 경험을 가진 시니어가 '섬기는' 마음으로 사회에 기여할 때, 신노년 세대는 단순한 경제 주체를 넘어 세대를 잇는 가교가 된다.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신노년 시대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글·사진 김영문